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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무기(無記, avyākata)와 인공지능의 패턴인식— 언어의 공성(空性)을 드러내는 두 가지 방편

avyakata or avyakrta 2026. 5. 9. 11:55

Korea Open Acces Journals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3321152  
Korean Journal of Buddhist Studies https://journal.kabs.re.kr/articles/article/DqrJ/  
『불교학연구』 2026, vol.86, pp. 235-258 DOI : 10.21482/jbs.86..202603.235 번역

Ⅰ. 서론
Ⅱ. 선행연구 및 연구방법
Ⅲ. 붓다의 무기(無記, avyākata)
Ⅳ. 패턴인식의 형식적 시연
Ⅴ. 결론

 

초록

언어는 일반적으로 의미를 담는 그릇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불교의 관점에서 이 그릇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방편(方便, upāya)에 불과하다. 붓다의 무기(無記, avyākata, Skt. avyākṛta)는 이렇게 언어로 전달되는 패턴을 의도적으로 중단함으로써, 언어가 ‘실재’의 본질이 아님을 드러낸다.

본 연구는 붓다의 무기를 통해 언어의 한계에 대한 불교적 통찰을 분석한다. 형이상학 질문에 대한 붓다의 침묵은 답변의 거부가 아니라, 언어의 구조를 초월하는 인식론적 행위로 해석된다. 본 연구는 이렇게 드러나는 언어의 공성(空性)을 추상 개념이 아닌 가시화된 형식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AI 패턴 인식 원리에 기반한 단순화된 Word2Vec 모델을 형식적 개념 시뮬레이션(formal conceptual simulation)으로 활용한다. 선정된 불교 텍스트 내에서 단어의 동시 출현 패턴을 정량화함으로써, 의미가 자존적(自存的)인 본질이 아니라 상호 의존하는 관계(paṭiccasamuppāda)로서 구성됨을 도식으로 제시한다.

결국 무기는 언어의 부정이 아니라 언어 표상의 공성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비언어 방편이며, Word2Vec은 그 공성의 구조를 정보 공간에서 시연 형식으로 드러내는 비언어 방편이다. 이 형식화된 모델(formalized model)의 활용을 통해 개념의 명료화를 추구하는 불교학 방법론의 확장을 제안한다.

주제어: 아비야까따, 무기(無記), 언표(言表), 공성(空性), 연기(緣起), 패턴인식, 분산표상

 

I. 서론

“말할 수 없는 것”(avyākata)[1] [2]의 문제는 불교 전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쭐라-말룽끼야뿟따 숫따』(MN 63)에서 붓다는 우주의 유한성, 여래의 사후 존재, 자아의 동일성에 관한 형이상학 질문들에 답하지 않는다. 이러한 침묵은 무지나 회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질문들이 현상의 조건 지어지고 상호 의존되는 본성을 잘못 표현하는 언어의 범주(paññatti)[3]의 고정성을 전제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붓다의 침묵은 언어의 부정이 아니라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언어는 대상을 가리킴으로써 의미를 생성하지만, 동시에 대상을 고정함으로써 관계의 연속성을 가린다. 이때 언표의 중단을 통해 언어의 구조를 넘어서게 되고, 인식이 의존하는 구조의 한계가 드러난다.

흥미롭게도 현대 인공지능 연구는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유사한 통찰에 도달했다. 언어를 고정된 의미의 담지자가 아니라 맥락 의존되는 패턴의 네트워크로 모델링하는 ‘분산표상 이론’은, 의미가 개별 단어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관계 배치의 함수임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수렴을 단순한 우연이 아닌, ‘패턴’에 대한 근본 통찰의 두 가지 표현으로 본다. 붓다의 침묵은 행위를 통한 비언어 방편으로서 언어의 공성을 드러내고, 인공지능의 패턴 인식은 계산 형식(computational form)을 통한 시각화라는 비언어 방편으로서 그 동일한 공성을 드러낸다. 방법은 다르지만 둘 다 언어의 공성을 드러낸다.

이에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한다.

붓다의 무기는 언어의 공성을 어떻게 드러내며, 이 언어의 공성은 현대 패턴인식 모델—특히 Word2Vec—을 통해 어떻게 형식적으로(formally) 예시될 수 있는가?

본 연구의 방법론은 두 층위에서 작동한다. 첫째, 니까야에 기록된 무기의 사례들을 통해 언어의 한계가 드러나는 방식을 분석한다(III장). 둘째, 이 언어의 공성이 현대 인공지능의 패턴인식 모델을 통해 어떻게 형식화될 수 있는지를 개념 차원에서 시연한다(IV장).

일견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두 접근은 사실 상호 보완 관계이다. 문헌 분석만으로도 관계에서 드러나는 언어의 본성이 무엇인지 논의할 수 있으나, 그것이 구조상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시각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 반면 패턴인식 모델만으로는 기계적 상관관계를 넘어서는 불교 통찰의 깊이를 포착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연구는 고전 문헌 해석과 현대 형식 모델을 결합하여, 언어의 공성을 실행을 통한 이해와 형식을 통한 이해라는 양 측면에서 조명한다.[4]

이러한 방법론의 선택은 불교학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불교 철학의 통찰이 현대 인지과학과 구조상 대응한다는 점은 이미 여러 학자(Varela 1991; Thompson 2007)에 의해 알려졌으나, 구체적으로 형식화된 모델을 통한 시연은 찾기 어렵다.[5] 본 연구는 그 간극을 메우려는 실험적인 시도이다.

 

II. 선행연구 및 연구방법

1. 선행연구

무기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째는 실천적-방법론적 해석으로, 여기에는 서로 연관된 두 가지 강조점이 포함된다. 보다 엄밀히 실천의 측면에서 콘즈(1959)는 붓다의 가르침이 형이상학 차원의 주장이 아니라 실천의 지침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했으며, 자야띨레께(1963) 또한 무기가 해탈에 이바지하지 않는 질문들에 관여하기를 거부하는 붓다의 실용주의 태도를 반영한다고 보았다. 방법론의 측면에서는 라훌라(1974)가 무기가 특정 형이상학 질문들의 범주가 가진 한계를 드러낸다고 강조했고, 곰브리치(2006)가 존재론의 탐구에서 과정 이해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이 해석들은 무기를 교리적인 회피가 아닌 방향의 전환으로 본다. 한국 학계에서는 황순일(2004)과[6] 권오민(2009)이 무기를 이론을 통한 사변의 중단으로 보며 그 실행을 통한 의의를 강조했다.

둘째는 철학·언어적 해석이다. 무르띠(1955)는 무기를 언어로 표현된 개념들이 ‘실재’를 포착 못하는 지점—즉 개념적 명칭(saññā-paññatti)과 궁극적 차원(paramattha) 사이의 간극—으로 설명했고, 가필드(1995)는 이를 언어가 자체의 관습적인 한계 내에서 작동하면서 개념적 구성의 너머를 가리키는 인식론의 행위로 해석했다. 이러한 접근들은 무기와 중관의 부정 모두를, 언어 범주의 조건을 지니는 본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7]

한편, 20세기 이후 정보이론과 인지과학은 불교의 언어관과 구조적 으로 상응하는 흥미로운 통찰들을 제시한다. 섀넌(1948)은 정보량을 확률 분포의 함수로 형식화하여, 의미와 독립된 통계적 모델을 수립했다.[8] 베이트슨(1972)은 정보를 “차이를 만드는 차이”로 정의하며, 의미가 관계에 있어서의 대비를 통해서만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9] 프리스턴(2010)의 예측 처리 이론은 인지를 예측오류 최소화의 조건적 추론 과정으로 설명함으로써, 지각이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 의존된 관계망임을 드러냈다.[10]

물론 이러한 연구들이 불교를 직접 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와 인식이 관계의 패턴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불교 사유와 공명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벤지오(2013)와 미콜로프(2013)의 분산표상 이론은[11] 의미가 고정된 정의가 아니라 동시출현 패턴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Word2Vec 모델은[12] 이러한 분포 패턴을 벡터 공간에 좌표화함으로써, 의미가 고립된 본질이 아니라 관계를 나타내는 거리와 방향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형식을 통해 보여준다.[13]

이러한 비교를 통해 본 연구는 불교의 통찰—언어는 관계의 조건에 의해 성립한다—과 인공지능 모델의 구조상 원리가 구조적으로 대응 (structural correspondence)을 이룬다고 본다. 붓다의 무기가 언어의 조건성을 침묵을 통해 드러냈다면, Word2Vec은 그 조건성을 형식화를 통해 드러낸다.

2. 연구방법

본 연구의 제1단계는 니까야 자료를 기반으로 한 문헌·철학적 분석이다. 주요 텍스트는 『쭐라-말룽끼야뿟따 숫따』(MN 63)이며, 『청정도론』(Visuddhimagga, Vism. XVIII.28)의 주석을 참조한다. 분석의 초점은 붓다의 침묵이 단순히 답의 부재가 아님을 밝히는 데에 있다. 이는 질문이 전제하는 언어를 이용한 틀의 부적절성을 드러내려는 인식론에 기반한 행위로 풀이된다. 이때 사용되는 핵심 개념인 개념적 명칭(paññatti)은 궁극 차원의 법(paramattha-dhamma)이 아니라 인식의 편의(vohāra)를 위한 명목상의 지정이다.[14] 따라서 언어는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투명한 매체가 아니라, 연기된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 표상 장치이다.

제2단계는 인공지능의 패턴인식 원리를 형식화된 개념 시뮬레이션의 형태로 활용하는 것이다.[15] Word2Vec 모델은 경험을 위한 검증 도구가 아니라, “언어는 관계의 패턴이다”라는 불교 논지를 형식화하기 위한 ‘사유 실험’이다.[16] 본 연구는 『반야심경』의 핵심 용어들을 코퍼스로 하여[17], 단어들의 동시출현 패턴을 벡터 공간에 투영한다. 이 시연은 통계 검증이 아니라[18] 탐색을 위한 시각화(heuristic visualization)로서, 추상 개념을 가시적인 구조로 전환해 이해를 돕는다.

Word2Vec의 구조를 이루는 분산표상 이론은, 의미를 단일 기호에 대응시키지 않고 다수의 단위(뉴런·특징)에 분포된 관계의 패턴으로 파악하는 인지과학 관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은 불교의 연기 (pratītyasamutpāda)와 구조로 볼 때 상응한다. 연기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독립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상호 의존되는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며, 그 자체로는 자성(自性, ‘svabhāva’)을 갖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분산표상에서도 의미는 개별 단어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주변 단어들과의 통계적인 관계망 속에서만 드러난다. 따라서 의미는 ‘존재’가 아니라 ‘패턴’이며, 독립된 본질이 아니라 관계에 따라 분포되는 함수이다.

이러한 구조상 대응 위에서 Word2Vec은 분산표상의 원리를 실제 언어 데이터에 적용하여 단어 간 동시출현 관계를 다차원 벡터 공간으로 형식화한 구체적인 신경망 모델이다. 다시 말해, 연기에 상응하는 분산표상이 “의미는 관계의 분포로 존재한다”는 이론상 틀이라면, Word2Vec은 그 원리를 수학을 통해 구현한 이 시대의 방편(upāya)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재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연 코드 전체와 실행 환경 및 결과를 공개 저장소(GitHub)에 게시한다.[19]

 

III. 붓다의 무기[20]

1. 무기의 구조와 언어의 한계

언표는 사유를 매개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제한한다. 언어는 대상을 지시함으로써 의미를 생성하지만, 그 지시 행위는 필연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잔여(residual indeterminacy)를 남긴다. 『쭐라-말룽끼야 뿟따 숫따』(MN 63)에서 말룽끼야뿟따가 세계의 유한성, 여래의 사후 존재, 자아와 몸의 동일성에 대해 질문했을 때, 붓다는 침묵으로 응답한다.[21]

이 열 가지 답변되지 않은 질문들(avyākatapañhā)[22]은 모두 존재론적 고정성을 전제로 한다. 즉 “세계는 영원한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 하는가?” 등의 질문은 개념적 명칭(paññatti)을 ‘실재’와 동일시하는 언어에 대한 집착(diṭṭhi-gata)에서 비롯된다. 붓다는 독화살의 비유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화살의 재질이나 쏜 사람의 신원을 묻는 동안 실제의 고통(dukkha)은 사라지지 않는다.[23] 그러나 이 비유는 단순한 실용주의에서의 회피가 아니라, 질문이 의존하는 언어 구조의 해체를 의미한다. 붓다의 무기는 언표의 부정이 아니라, 언어가 스스로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비언어로 드러내는 행위이다.[24]

2. 개념적 명칭(paññatti)의 한계

붓다의 침묵이 드러내는 것은 언어의 한계이다. 언어는 현상을 설명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단순화하고 범주화하여 고정시킨다. 『상윳따니까야』(SN II 114)에서는 “이름과 형상(nāma-rūpa)에 의존하여 의식(viññāṇa)이 있고, 의식에 의존하여 이름(nāma)과 형상(rūpa)이 있다”고 한다.[25] 이는 언어[nāma]와 현상[rūpa]이 상호의존을 통해 발생한다는 뜻이다. 언어는 ‘실재’ 위에 씌워진 투명한 매개가 아니라, 현상과 함께 조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관계의 패턴이다.

『청정도론』은 paññatti를 ‘개념적 지정’으로 정의하며, 이것이 인식의 편의(vohāra)를 위한 명칭일 뿐 궁극 차원의 법(paramattha-dhamma)이 아님을 강조한다[Vism. XVIII.28]. 예컨대 ‘수레’라는 단어는 바퀴·축·몸체 등이 특정한 배열을 이룰 때 붙이는 이름일 뿐, 독립되어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26] 마찬가지로 ‘세계’, ‘자아’, ‘여래’ 같은 형이상학 범주들 역시 언어의 구성물이며, 이에 대해 확정된 진술을 시도하는 것은 언어의 기능을 오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이상학 질문들은 이중의 오류를 범한다. 첫째, 언어의 범주가 ‘실재’의 독립된 실체들을 지시한다고 가정한다. 둘째, 그 범주들에 대해 긍정·부정으로 양분되는 판단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붓다의 침묵은 이 두 전제를 동시에 해체하며, 언어의 사용을 보류함으로써 언표가 구성되는 조건을 스스로 비추어 내보이는 장치로 작동한다.[27]

3. 침묵의 인식론적 기능—공성으로의 문

무기는 언어의 부정이 아니라, 언어가 그 자신의 한계 조건을 드러내는 자기-지시 행위이다. 무르띠(1955)는 이를 ‘언어의 자기-초월’이라 불렀고, 본 연구는 이 초월이 곧 언어 구조의 드러남이라고 본다. “세계는 영원한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음으로써 붓다는, ‘세계’와 ‘영원’이라는 개념이 ‘실재’를 지시하지 않음을 실행을 통해 보여준다.

이렇게 언어가 중단될 때 비로소 그 관계에서의 본성—언어의 공성—이 드러난다. 공성은 무(無)가 아니라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이며, 나가르주나가 말한 “공성과 연기는 다르지 않다(śūnyatā pratītya-samupādasyāparyāyaḥ)”(MMK 24.18)는 바로 이 관계 의존성의 완전한 인식을 뜻한다.[28]

따라서 무기는 언어의 끝에서 열리는 공성으로의 문이다. 언어를 침묵시킴으로써 붓다는 언어의 관계적 조건성—즉 연기의 구조—을 드러낸다. 이 침묵은 ‘비언어 방편’으로서, 언어의 구조를 인식하게 하는 실행의 장치이자 언표의 자기-초월 작용이다.

 

IV. 패턴인식의 형식적 시연

1. 형식적 시연의 의의

앞장에서 보았듯, 붓다의 무기는 언어가 ‘실재’를 고정된 범주로 재단하는 경향을 중단시키는 비언어 표상이다. 붓다의 무기는 언어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언어가 그 한계 조건을 드러내도록 만드는 형식적인 행위이다. 본 장의 목적은 이와 같은 인식론적 구조—언어가 관계로 이루어진 패턴일 뿐이라는 통찰—를 현대 인공지능의 패턴인식 구조를 통해 형식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Word2Vec 모델의 핵심 원리를 개념적 시연으로 제시한다.

이 시연은 통계를 통한 검증이 아니라 ‘사유 실험’이다. 연기에 대한 바른 이해가 그 공성을 자각하게 하듯, 이 시연은 언어의 관계 구조를 형식으로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도식을 제공한다.

2. Word2Vec의 기본 구조: 관계적 의미의 공간화

Word2Vec은 코퍼스에서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빈도를 분석하여 단어 간의 동시출현 패턴을 벡터 공간상에 좌표화하는 모델이다. 각 단어는 수치를 통한 벡터로 변환되며, 벡터 간의 거리와 방향은 의미의 유사성의 정도를 나타낸다. 즉,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 자체의 본질이 아니라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 분포로 표현된다. 이 구조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자성(niḥsvabhāva)—대상이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의존 관계 속에서만 성립한다는 통찰—과 형식상 상응한다.

이 점에서 Word2Vec은 관계적 세계관을 기하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imasmiṃ sati idaṃ hoti)는 연기의 논리가 이 모델에서는 “이 단어가 등장할 때 저 단어가 함께 등장할 확률이 있다”는 통계적 상호의존으로 치환된다. 물론 이는 붓다의 실제 통찰을 단순히 수학화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존재론을 시각을 위한 형식으로 사유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3. 의미 공간에서 드러나는 공성의 구조

모델이 구성한 벡터 공간은 단어 간 관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용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재배열됨을 보여준다. 특정 단어의 의미는 벡터 공간 내의 위치로 표현되지만, 그 위치는 주변 단어들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적 존재론(paṭiccasamuppāda) — ‘상호의존하여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구조—과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이 관계망 속에서 ‘의미’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위치의 함수이다. 언어는 더 이상 ‘실재’를 반영하는 투명한 거울이 아니라, 의미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장(field)으로 드러난다. 붓다의 무기가 언어의 고정화를 중단시키듯, Word2Vec의 벡터 공간 또한 언어를 움직이는 관계 구조로 보여준다. 언어는 실체가 아니라 패턴이며, 의미는 자립적 본질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이다.

4. 인식론적 비교: 행위와 형식화

붓다의 무기와 Word2Vec은 서로 다른 방법—행위와 형식화—으로 동일한 구조를 드러낸다.

  • 무기는 언표를 멈춤으로써 언어의 조건성을 체험하게 한다.
  • Word2Vec은 언표를 데이터로 변환하여 그 조건성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즉, 전자는 실천을 통한 방편이며 후자는 형식을 통한 방편이다. 둘 다 언어가 ‘실재’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된 조건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가시화한다. 이러한 비교는 불교 관점의 현대적 확장을 의미한다. 붓다의 무기는 더이상 단순한 기본 가르침이 아니라, 언어의 구조를 통찰하는 인식 행위로 재해석된다.[29] Word2Vec은 이 인식 행위를 정보 공간에서 재현하는 형식 실험으로 기능한다.

5. 한계와 방법론상 주의

이 시연은 실제 데이터 분석이 아닌 형식 모형에 기반한다.

첫째, 사용된 코퍼스(『반야심경』)는 소규모라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할 수 없다.[30]

둘째, 벡터 투영(t-SNE, PCA)은 다차원 관계를 2차원으로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기존 의미의 거리나 방향이 일부 달라질 수 있다.[31]

셋째, 불교 용어 개념의 깊이는 수치적 근사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본 장의 시연은 실증적 결론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어의 관계 구조를 형식과 경험으로 탐색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붓다의 무기와도 상응한다. 붓다의 침묵이 ‘진리의 부재’가 아니라 ‘표상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었다면, 본 연구의 형식화 또한 ‘데이터를 실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구조에 대한 자각’으로 이끈다.

[표 1] 두 방편의 구조 대응

구분
불교의 구조
AI 모델 구조
수렴 지점
행위(무엇)
무기(침묵)
Word2Vec(형식화)
언어의 조건성
방식(어떻게)
실천적 방편
(언표의 중단)
형식적 방편
(언표의 변환)
구조적 대응
목표()
비언어 표현을 통한
언어의 공성 인식 유도
언어의 공성 인식
해체대상
(무엇을)
주관적 전제
범주화된 표상
언어에 대한 실체론 관점


비고: 표 1은 두 방편의 구조 대응을 요약한다. 무기는 체험 실현을 유도하는 실천 행위를 통해 공성을 드러내고, Word2Vec은 구조의 패턴을 드러내는 형식을 시연함으로써 공성을 드러낸다. 서로 다른 인식론의 층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둘 다 언어의 관계의 본성을 드러내어 언어에 대한 실체론 관점—단어가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는 가정—을 해체한다.

6. 요약

붓다의 무기는 언어를 멈춤으로써 언어의 조건성을 드러내는 비언어 방편이며, Word2Vec의 시연은 언어의 관계 구조를 형식화함으로써 그 조건성을 가시화하는 현대의 방편이다. 두 접근 모두 언어의 공성—의미가 자립적 본질이 아니라 관계적 발생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결국 무기의 인식론은 침묵이라는 실천을 통한 방식으로, Word2Vec은 도식화라는 형식을 통한 방식으로, 동일한 통찰을 서로 다른 차원에서 구현한다.

 

V. 결론

본 연구는 붓다의 무기와 인공지능의 패턴인식 모델을, 언어의 공성을 드러내는 두 가지 방편으로 분석했다. 붓다의 무기는 언표의 거부가 아니라, 언어의 작용이 도달하는 한계점에서 언어 자체의 조건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쭐라-말룽끼야뿟따 숫따』(MN 63)에서 붓다는 답을 중단함으로써, 질문 자체가 전제하는 언어 구조—개념적 명칭(paññatti)이 ‘실재’를 고정하려는 경향—를 해체했다. 이 침묵은 부정이 아니라 통찰이다. 언어의 공성(suññatā), 즉 언어가 스스로 본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의 조건(paṭiccasamuppāda)을 통해 의미를 갖는다는 인식이 바로 그 통찰의 내용이다.

현대 인공지능의 패턴인식, 특히 Word2Vec 모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구조를 드러낸다.[32] 단어들은 고정된 의미를 지니지 않고,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적 위치를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이는 연기의 논리—“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imasmiṃ sati idaṃ hoti, SN 12.1)—와 형식상 대응한다.

따라서 두 방편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무기: 언표를 중단함으로써 언어의 공성을 행위로 드러내어, 그 공성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 Word2Vec: 언표를 형식화함으로써 언어의 공성을 또 다른 표상 으로 드러내어, 그 공성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전자는 실천을 통한 방편이며 후자는 형식을 통한 방편이다. 둘 다 의미가 독립된 본질이 아니라 관계의 배치 속에서 발생한다는 통찰—언어의 공성—을 드러낸다.

불교학에서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첫째, 붓다의 무기를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언어의 작용을 드러내는 인식 행위로 재해석함으로써, 초기불교의 무기를 철학과 방법론의 층위에서 복원한다. 둘째, 인공지능의 패턴인식 모델을 형식적 시연으로 활용하여 언어의 ‘관계에 따라 층위화된’ 구조를 가시화함으로써, 불교 관점의 현대적 재현 가능성을 제시한다. 셋째, 불교학 연구에서 형식 도구(통계모델·정보구조)를 해석학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이는 경험의 검증이 아니라 개념의 명료화를 위한 탐색 방법론(heuristic methodology)으로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도 남는다. 인공지능의 모델은 패턴을 인식하지만, 그것이 패턴임을 자각하지는 못한다. 반면 불교의 통찰은 바로 그 자각, 곧 ‘여실지견’(如實知見, yathābhūta-ñāṇa-dassana) 에 있다. Word2Vec은 공성을 ‘보여주지만’, 공성을 자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 형식적 실험은 불교 수행의 대체물이 아니라, 불교의 통찰을 현대 언어 구조 속에서 형식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도식 장치로 기능한다. 본 연구에서 이 방편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 중 하나로 활용되어, 인간이 언어에 집착하는 경향을 시각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33]

결국 붓다의 무기와 현대의 패턴인식은 서로 다른 시대의 언어를 통해 동일한 통찰—언어는 ‘실재’의 담지자가 아니라 관계적 패턴의 표현이다—에 도달한다. 붓다는 이를 침묵의 행위로 드러냈고, 현대 과학은 이를 숫자라는 표상으로 재현한다. 그 만남은 불교의 관점이 단순한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언어와 인식의 보편 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임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REFERENCES

◆ 약호 및 일차 문헌 Abbreviations and Primary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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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어 관련 주석. 일관성을 위해 니까야 기반 개념에는 팔리어 형태(예: avyākata, paṭiccasamuppāda)를, 마하야나 맥락에서 뚜렷하게 철학적 발전을 이룬 용어에는 산스크리트 형태(예: upāya)를 사용한다. MN 63: 열 가지 답변되지 않은 질문(avyākatapañhā)에는 세계의 영원성 여부, 여래의 사후 존재 여부, 자아와 몸의 동일성 여부 등이 포함된다.

[2] avyākata(팔리어, 한자 無記)는 동사 어근 ā-vi-√kṛ에서 형성된 산스크리트 과거수동분사 avyākṛta에서 유래하며, 문자로는 “구별되지 않은, 분화되지 않은, 드러나지 않은”을 뜻한다. 초기 불교 문헌에서 이 용어는 형이상학 질문들에 대한 붓다의 침묵을 지시하지만(MN 63; SN 44.10), 어원에서의 구조는 더 넓은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 『브리하다란야까 우파니샤드』(1.4.7)는 이 용어를 원초적인 미분화 상태를 기술하는 데 사용한다. “그때 이 [세계]는 실로 분화되지 않은 것이었다(tad dhedaṃ tarhy avyākṛtam āsīt); 이는 바로 이름과 형상에 의해 분화되었다(tan nāmarūpābhyām eva vyākriyata)”. 이 우파니샤드의 맥락에서 avyākṛta는 nāmarūpa—경험을 개념적(nāma)·지각적(rūpa) 구조로 조직하는 범주 틀—의 작용 이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3] MN I.426-431 (PTS). Vism. XVIII.28.

[4] 본 연구는 곰브리치(2009)가 제안한 “과정 중심의 불교 이해”에 기반한다. 곰브리치는 해석의 틀을 “무엇이 존재하는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같은 맥락에서 라훌라(1959)는 오온이 존재론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자아 표상을 해체하기 위한 인식론의 도구로 기능한다고 밝혔으며, 황순일(2004)은 무기를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방법론의 전환으로 재해석했다. 즉 붓다는 형이상학 질문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질문들을 가능하게 하는 주관적인 전제들을 해체한다는 것이다(SN 12.12).

[5] 본 연구는 완전히 새로운 철학의 돌파구 제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 인식론과 계산언어학 사이의 구조 대응을 예시하려는 것이다. Word2Vec은 관계적 구조를 관찰하기 위한 예시 도구(heuristic device)로 활용되며, 불교 교리의 경험적 증명 수단이 아니다. 이 모델은 도식화된 도구—고전 인도 논리에서 dṛṣṭānta(예시 사례)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인식론의(pramāṇa-theoretic) 엄밀한(협의) 차원이 아닌 유비의 의미(광의)로 사용—를 제공한다.

[6] 특히 황순일(2004)은 무기를 단순히 “대답하지 않은 것”으로 보지 않고, 붓다의 여리작의(如理作意, yoniso manasikāra)에 의한 방법으로 해석한다. 그는 통상 ‘바른 생각’으로 번역되는 이 개념을 “원인에 따라 생각하기”로 옮기는데, 이는 manasikāra의 어원적 의미를 “주의(attention)”가 아닌 “사유의 형성(making mind)”으로 읽고, yoniso를 “근원으로부터(from the source)” 또는 “방법론에 의해(methodologically)”로 해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무기는 요니소마나시카라에 기반한 방법론적 침묵, 곧 사유 의식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메타인지의 행위로 재정의된다. 그에 따르면 붓다는 “무엇인가?”를 묻는 형이상학 질문을 버리고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있는가?”를 묻는 인과적 질문으로 사유의 틀을 전환했으며, 이러한 사유 전환 자체가 무기의 의미를 구성한다. 결국 무기는 “언표의 불가능”이 아닌 “언표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론의 전이”로 이해된다.

[7] 무르띠(1955)와 자야띨레께(1963)의 연구로부터 비롯된 이 두 해석 방향은 불교학의 고전적인 대립 구도를 잘 보여준다. 자야띨레께는 무르띠의 해석이 초기 불교의 실용주의 지향을 지나치게 형이상학화한다고 명시적으로 비판했다(Jayatilleke 1963, 474-475, §815). 본 연구에서는 이 두 해석 방향 사이에서 판정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공유하는 형식에서의 속성—언어 개념 작용의 중단을 요구한다는 것—을 분석의 토대로 삼는다. 어느 해석이 붓다의 본래 의도를 더 정확히 반영하는지는 별도의 학술 연구 과제로 남겨둔다.

[8] 섀넌은 일반적으로 정보이론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그는 1948년 논문 「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에서 ‘정보’를 의미론과 독립된 형식의 개념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연구의 초점을 “무엇이 말해졌는가”에서 “얼마나 불확실성이 줄어들었는가”로 전환하며, 정보량을 확률 분포의 함수, 즉 수학을 통해 표현했다. 즉 정보는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 내용이 아니라, 가능한 선택지들 사이의 불확실성이 감소하는 정도로 이해된다. ‘의미’를 관계에 있어서의 구조와 변별 가능성으로 대체함으로써, 이 정의는 언어를 내용이 아닌 형식의 관계망으로 파악하는 길을 열었다(Shannon 1948).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자성(niḥsvabhāva)과 형식의 면에서 상응한다.

[9] 베이트슨(1904-1980)은 『마음의 생태학』(1972)에서 정보를 “차이를 만드는 차이(a difference that makes a difference)”로 정의했다. 그는 정보의 본질을 실체화된 내용이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의 대비 속에서 파악했다. 어떤 자극이나 기호가 정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대안들 사이에서 변별력이 있는 차이를 발생시켜야 하며, 바로 이 ‘차이’가 인식의 단위가 된다. 따라서 정보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의 대비망 속에서 발생하는 형식에서 관계의 패턴이다(Bateson 1972). 이는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imasmiṃ sati idaṃ hoti, DN 15)는 연기의 조건 기반 논리와 구조상 공명한다.

[10] 프리스턴(1959- )은 신경과학자이자 이론생물학자로, ‘자유에너지 원리(free-energy principle)’를 바탕으로 예측 처리 이론을 제시했다(Friston 2010). 이 이론은 뇌를 감각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는 기관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예측 모델을 지속하여 생성하고 수정하는 능동적 추론 시스템으로 본다. 뇌는 외부 세계를 직접 인식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신의 예측과 실제 감각 입력의 차이—즉 예측오류—를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때 인식이란 고정된 실체를 파악하는 행위가 아니라, 끊임없는 조건의 조정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지각은 외부 대상의 복제가 아니라, 관계를 통한 상호 의존 속에서 의미를 임시로 형성하는 확률적인 패턴 추론이다(Friston 2010; Thompson 2007).

[11] AI 및 인지과학에서 개념이나 단어의 의미를 개별기호로서가 아니라, 다차원 표상공간 내 여러 단위의 관계 분포로 파악하는 이론을 가리킨다. 전통적인 상징주의가 “하나의 개념=하나의 기호”의 대응을 전제한 데 반해, 분산표상은 의미가 신경망의 전체 활성 패턴에 분포되어 있다고 본다. 예컨대 ‘왕(king)’이라는 단어는 독립된 기호가 아니라 남성·통치·권력·궁전 등과 같은 수많은 맥락상 요소들의 통계상 조합으로 표현된다(Bengio et al. 2013; Mikolov et al. 2013). 이러한 이해는 언어를 관계 패턴의 네트워크로 보는 불교의 연기적 관점과 구조로 볼 때 유사하다.

[12] Word2Vec은 구글의 토마스 미콜로프 연구팀이 2013년에 제안한 언어모델이다. 복잡한 심층 신경망과 달리, Word2Vec은 단어 간 관계를 다차원 벡터 공간—거리와 방향이 의미 관계에 대응하는—에 직접 표현하여 인간이 구조로 분석할 수 있는 해석 가능한 모델이다. 따라서 의미가 관계의 패턴으로 발생한다는 불교의 통찰을 형식으로 예시하기에 적합하다. 이 틀 안에서 단어 간 의미의 유사성은 점들 사이의 거리와 방향으로 표현되어, 의미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관계 배치의 패턴으로 드러난다. 분산표상 이론이 의미를 단일 기호에 대응시키지 않고 다수의 단위(뉴런·특징)에 분포된 관계된 패턴으로 파악하는 인지과학의 틀이라면, Word2Vec은 그 이론을 실제 언어 데이터에 적용하여 다차원 벡터 공간 내 단어들의 동시출현 패턴을 학습하는 구체적인 신경망 모델이다. 다시 말해, 분산표상이 “의미는 관계의 분포로 존재한다”는 이론이라면, Word2Vec은 그 원리를 수학으로 구현한 것이다(Bengio et al. 2013; Mikolov et al. 2013).

[13] Word2Vec에서 단어를 벡터로 표현하는 것이 의미를 수로 환원한다는 뜻은 아니다. ‘벡터(vector)’라는 용어는 라틴어 vectōr(‘운반자’)에서 유래하며, 원래 고정된 내용이 아니라 이동과 배열을 가능하게 하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의미는 현대 수학과 프로그래밍에도 남아 있다. Word2Vec에서 벡터는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니라, 단어 사용의 관계적 패턴을 비교하고 변환할 수 있는 좌표 구조로 기능한다. 개별 벡터 구성 요소는 단독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다른 벡터들과의 거리 및 방향 관계를 통해서만 기능한다. 실제 기계학습에서 벡터는 의미의 표상이 아니라 연산을 가능하게 하는 계산 형식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벡터 표상은 객체화된 의미가 아니라, 의미 관계가 배열되어 드러나는 형식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

[14] Vism. XVIII.28.

[15] ‘시연(demonstration)’은 데이터를 검증하는 실증(empirical)이나, 절차를 시험하는 파일럿(pilot) 실험도 아니며, 개념의 구조를 단순화하여 형식으로 드러내는 행위이다. 세부 수치를 정밀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패턴과 변형 속에서도 유지되는 불변의 구조를 관찰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이 점에서 시연은 위상수학의 인식 방식과 유사하다. 위상수학이 도넛과 머그잔을 구분하지 않고 표면의 구멍 수와 연결성 같은 특성을 본질로 간주하듯, 시연도 복잡한 세부를 단순하게 하여 기저의 형식화된 구조를 드러낸다. 본 연구의 Word2Vec 시연도 이런 의미에서 언어 의미를 통계상 수치가 아니라 관계의 패턴으로 드러내는 위상적 언어 이해의 한 예이다.

[16] Word2Vec은 안정적인 구조가 관계의 패턴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예시한다. 본 연구는 공성의 구조 차원—의미가 고유한 본질(svabhāva)이 아닌 관계를 통해 발생한다는 원리—을 형식화하며, 공성의 체험 차원(yathābhūta-ñāṇa-dassana, 공성의 직접 실현)은 다루지는 않는다. 벡터 공간에서 ‘왕(king)’은 고정된 위치를 점하지만, 그 의미는 전적으로 관계상 거리에서 발생한다. ‘여왕(queen)’, ‘왕관(crown)’, ‘권력(power)’, ‘통치(rule)’와의 근접성, 그리고 ‘농민(peasant)’, ‘신하(subject)’, ‘하인(servant)’과의 대비가 그것이다. 어떤 단일 벡터도 의미를 담지 않으며, 의미는 모든 관계의 배치이다. 이는 공성과 연기가 동일한 실재에 대한 두 가지 기술이라는 나가르주나의 통찰을 예시한다(MMK 24.18).

[17] ‘코퍼스(corpus, 말뭉치로 번역되기도 한다)’는 분석을 위해 전자화된 텍스트의 집합을 의미하며, 언어학과 인문정보학에서는 개별 문장보다 맥락에서의 사용 패턴을 관찰하기 위한 자료 단위로 활용된다. 본 연구에서는 『반야심경』의 한문 원문을 하나의 코퍼스로 간주하여, 그 안의 단어 간 동시출현 패턴을 Word2Vec 모델로 형식화했다. 이는 텍스트의 교리적인 내용을 통계로 검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관계의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방식을 형식으로 시각화하려는 탐색의 시연이다. 『반야심경』을 코퍼스로 선택한 이유는 (1) 공성의 관계 구조를 가장 압축하여 표현하고, (2) 반복·병렬 구문이 뚜렷하여 Word2Vec이 동시 출현 패턴을 명확히 포착할 수 있으며, (3) 짧지만 구조적으로 풍부하여 소논문 규모의 실험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한편 팔리 경전은 합송 전통으로 언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어휘 변이의 폭이 적어 단어 간 관계 패턴의 비교 분석에 제약이 있으므로 본 시연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18] Word2Vec을 채택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1) Word2Vec의 구조를 이루는 분산표상 이론은 언어의 표층의 고정성 아래에서 작동하는 관계 구조를 형식화할 수 있어, 언어의 공성을 가시화하기에 적합하다. (2) 맥락 의존성 측면에서 Word2Vec은 BERT나 GPT보다 낮지만, 소논문의 규모와 인문학 독자들의 구조 이해 접근성을 고려하면 이들보다 더 적합하다. 중요한 것은 Word2Vec이 언어를 표면에서만 객체화하는 통상의 이해 방식에 비해 관계의 구조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으며, 그 작동 층위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19] https://github.com/samtustadguackr/avyakata-supplementary

[20] 본 연구가 무기를 중심 분석 모델로 채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붓다의 언어철학이 인식론적 임계점에서 그 본질을 드러내는 정교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붓다의 다양한 언어를 통한 가르침들은 각각 고통의 바다를 건너기 위한 필수 ‘뗏목’(kullā)으로 기능한다. 이에 반해 무기는 언어 표상이 더 이상 가리킬 실질 지시 대상을 찾을 수 없는 “강 건너의 상태” 관련 질문들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는, 드문 패턴이다. 이 지점에서 붓다는 ‘뗏목’(언어)의 사용을 중단함으로써 언어 표상 자체의 한계를 드러낸다—언어가 도달할 수 없는 ‘언어 표상의 구조적 공성’을 간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21] MN I.426-31 (PTS). 인도 사상에서 침묵(mauna)은 종종 말의 부재가 아니라 비언어 소통 방식으로 기능한다. 『찬도기야 우파니샤드』(6.1-6.2)에서 우달라까 아루니는 슈웨따께뚜가 브라흐만의 본질에 대해 묻자, 언어 정의가 아닌 비유와 의도적 침묵을 통해 궁극의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전달한다. 마찬가지로 초기 불교 승가에서도 집단의 동의는 의례적으로 침묵을 통해 표현되었다. 『출라와까』 IV(Vin II 88-93)에 따르면 안건이 세 번 공표되었고—"동의하는 자는 침묵하라, 동의하지 않는 자는 말하라”—대중이 침묵(tuṇhī-bhāva)할 때 그 안건은 승인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듯 인도 전통의 해석 맥락에서 붓다의 “침묵의 형식으로 한 응답”은 거부나 무지가 아니라 문화의 맥락 안에서 이해 가능한 소통 방식으로 읽힌다.

[22] 요약문과 핵심어에서는 보다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번역인 “대답하지 않은(unanswered)”을 사용한다. 그러나 어원적 구조에 비추어 볼 때 avyākata는 범주의 틀을 통해 다룰 수 없는 질문들—즉 “선언되지 않은(undeclared)”—을 표시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nāmarūpa가 경험을 조직하는 범주화된 장치를 구성한다면, avyākatapañhā는 그 장치의 작용에 선행하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전제들을 가진 질문들을 가리킬 것이다.

[23] MN I.430.

[24] 여기에서 침묵을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는 비언어 행위’로 정의하는 것은, 침묵이 어떤 형이상학적 실체(예컨대 śūnyatā)를 의도적으로 가리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 침묵은 질문자가 설정한 언어 표상의 틀 안에서 작동하기를 거부하는 ‘구조적인 중단’이며, 바로 그 틀의 조건으로 인한 본성과 한계를 드러낸다. 이 의미에서 실천의 의도와 공성에 대한 인식론의 드러남은 분리되지 않으며, 침묵이라는 행위 자체가 만들어내는 구조 안에서 일치하게 된다.

[25] SN II.114; DN II.63.

[26] Vism. XVIII.28. paññatti가 니까야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런 구절이 있다. “puggaloti paññattimattaṃ, khandhaparamatthaṃ”(AN 9.20)—“’사람(puggala)’이란 paññatti(개념적 명칭)에 불과하고, 온(蘊, khandha)이 궁극의 ‘실재’이다”. 수레의 예는 『밀린다팡하』에도 vohāra-matta의 사례로 제시된 바 있다.

[27] 라훌라(1974, 62-64)는 무기를 “잘못 만들어진 질문들(ill-formed questions)”—위의 분석처럼 범주 착오와 오류로 이끄는 이분법의 전제에 기초한 질문들—에 대한 붓다의 응답으로 규정한다.

[28] MMK XXIV.18. 나가르주나는 공성을 연기와 동일시하지만, 이 동일시가 붓다의 본래 의도를 반영하는지는 별도의 논증을 요하는 문제이다. 본 연구는 언어의 관계적 구조를 분석하는 데에 있어 그 설명의 힘에 주목하여 중관의 해석 틀을 해석의 전제로 채택한다. 다만 이 전제의 독립 논증은 본 논문의 범위를 벗어나기에, 향후 연구 과제로 남겨둔다.

[29] 『견해의 경』(AN IV.68)에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같은 모든 형이상학 주장을 붓다는 견해에 대한 집착(diṭṭhi)으로 분류하고, 그러한 주장을 극복한 상태가 ‘견해로부터의 해탈’(vimutti diṭṭhigatānaṃ)임을 가르친다. 이러한 재해석은 현대 언어철학, 특히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통찰(『논리철학논고』 5.6) 및 언어를 삶의 형식 안에서의 사용으로 인식한 그의 후기 철학(『철학적 탐구』)과도 일치한다.

[30] 방법론으로서 그 한계가 분명함에도 이 방법론을 채택하는 이유는, 언어가 작동하는 층위들을 보다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표층과 심층의 이원적 구조를 직관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이 구분이 일상적인 언어 경험에서는 전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정보이론 기반 언어 모델—특히 Word2Vec과 같은 분산표상 방식—에 접근함으로써, 언어의 표층에서 드러나는 범주와 개념의 작동을 넘어서는 구조적 층위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작동은 프로그래밍 언어와 형식 구조를 통해 구현되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지만 특정 기술 맥락에서 구조로서 명확히 존재한다. 따라서 언어 모델의 구조 층위는 단순한 표층 기호 체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식이 언어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드러내는 형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아니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논문 수준의 연구 환경에서 시도할 만한 방법론으로의 가치는 충분하다.

[31] t-SNE(t-distributed Stochastic Neighbor Embedding, t-분포 기반의 확률적 근접성 임베딩)와 PCA(Principal Component Analysis, 주성분 분석)는 고차원 데이터의 관계를 시각화하기 위해 차원을 축소하는 통계 기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화 과정에서 원래의 다차원 거리나 방향 관계가 완전히 보존되지 않기에, 투영된 평면에서 일부 의미상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즉 복잡한 관계망을 도식화하는 과정에서 관계의 세부 비율이 달라지는 것이다(Van der Maaten and Hinton 2008). 이러한 축소 과정은 단순한 통계 수치 처리가 아니라, 구조상 형식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양적인 세부사항은 변경되지만 질적인 관계—연결성과 연속성—는 보존되는 위상 변환과 유사하다. 따라서 차원의 투영은, 위상수학처럼 수치 변화 이면에 자리한 관계 구조의 불변성을 추구하는 단순화의 탐색 행위로 기능한다.

[32] 무기와 Word2Vec은 서로 다른 인식론 층위에서 작동하지만—전자는 주관적-전제 층위에서 표상을 무효화하고, 후자는 객관적-범주 층위에서 언어의 공성을 예시한다—표상 장치의 해체 라는 공통된 구조로 인한 방향을 공유한다. 공성은 이 층위에서 서로 다르게 드러난다. 무기의 경우 전제 틀의 실행 중단을 통해, Word2Vec의 경우 관계의 의존성의 형태적인 드러남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둘 다 동일한 통찰을 보여준다. 의미는 독립된 본질이 아니라 상호 의존 관계를 통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구조를 통한 대응은 두 방법을 동일하게 보는 것이 아니며, 둘이 상보적인 관점에서 동일한 대상—표상의 허망한 안정성—을 다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33]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불교에서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 언표가 진리를 직접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리키는 방편으로만 쓰임을 상징한다. 『능엄경』(首楞嚴經, T945, No. 19)에서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다른 사람은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본다. 그러나 손가락만 본다면 달을 놓친다”고 말한다. 즉 언어는 가리킴(指)에 불과하고 진리는 그 대상(月)에 있다. 따라서 붓다의 침묵은 가리키는 손가락(언어)이 달(진리)과 동일시되는 착각을 끊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